
솔직히 저는 '한산'을 베트남 현지 극장에서 보면서 이렇게 일본어 대사가 많을 줄 몰랐습니다. 한국 영화니까 당연히 다 알아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결국 같은 영화를 두 번 봤습니다. 첫 번째는 전투 장면에 압도됐고, 두 번째에야 비로소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베트남 극장에서 마주친 예상 밖의 언어 장벽
일반적으로 한국 영화를 해외에서 보면 자국어 더빙이나 현지 자막이 붙기 마련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달랐습니다. 베트남 극장에서 상영된 '한산'은 한국어 대사엔 베트남어 자막이 붙었지만, 영화 속 일본군 장수들이 나누는 일본어 대사에는 자막 처리가 없거나 불완전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살아 돌아온 병사들의 보고를 듣는 장면, 조선 수군의 화포 사거리를 분석하는 장면, 이 장면들이 실제로 영화 전반부 긴장감의 핵심인데 제가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왜군이 뭔가 계획 중이구나' 정도로만 넘어갔습니다. 타국에서 한국 영화를 만난 반가움이 워낙 컸던 탓에, 그 아쉬움을 제대로 인식하기까지도 시간이 걸렸을 정도입니다.
결국 자막이 있는 버전으로 한 번 더 봤습니다. 두 번째 관람에서야 와키자카가 파괴된 함선 잔해를 살펴보며 거북선의 구조를 역분석하는 장면의 무게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해외에서 우리 역사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는 분명히 감사한 일입니다만, 자막 완성도 면에서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학익진, 바다 위에서 처음 펼쳐진 포위 전술
영화를 두 번 보고 나서야 이 장면의 무게를 제대로 이해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 대첩에서 사용한 핵심 전술인 학익진(鶴翼陣)은 말 그대로 학이 날개를 펼치듯 함대를 좌우로 넓게 펼쳐 적을 반원형으로 감싸는 포위 전법입니다. 육상에서는 기마대를 활용한 학익진이 간헐적으로 등장했지만, 해상에서 이 대형을 구사한 것은 한산도 대첩이 사실상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제가 특히 눈여겨본 건 훈련 장면에서 거북선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설정이었습니다. 영화 속 이순신은 왜군 첩자가 거북선의 설계도를 탈취해 달아났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아예 이번 출정에서 거북선을 투입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그러면서도 학익진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하는 장면은, 전술가로서의 이순신의 면모를 압축적으로 보여줬습니다.
실제 역사 기록을 보면, 한산도 대첩은 1592년 7월에 벌어졌고 조선 수군이 왜선 70여 척을 격파 또는 나포한 임진왜란 최대 해전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왜군의 서해 진출로가 차단되었고, 보급선이 끊기면서 육상 전선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출처: 문화콘텐츠닷컴 한국 전통문화 DB).
- 학익진: 함대를 좌우로 넓게 전개해 반원형으로 적을 포위하는 해상 전술
- 견내량 협수로 유인 후 한산도 앞 넓은 바다로 끌어낸 뒤 포위 섬멸
- 판옥선의 높은 선체와 화포 집중 운용으로 왜선의 등선(登船) 전술을 무력화
- 거북선 미투입 상황에서도 전술 완성도로 결정적 승리 달성
거북선, 공포의 실체를 파고든 왜군의 시선
일반적으로 거북선 하면 조선 수군의 무적 철갑선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런데 제가 두 번째 관람에서 새로 발견한 건, 오히려 왜군 시점에서 거북선을 바라보는 방식이 훨씬 흥미롭다는 점이었습니다. 와키자카는 살아 돌아온 병사들의 진술을 듣고, 파괴된 아군 함선의 잔해를 분석하면서 거북선의 구조와 약점을 역추적합니다. 이건 단순한 공포 묘사가 아니라, 명장으로서의 와키자카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연출이었습니다.
거북선의 정식 명칭은 귀선(龜船)입니다. 여기서 귀선이란 거북의 등을 본뜬 덮개 구조를 갖춘 돌격용 전투함을 의미합니다. 판옥선(板屋船)이 2층 구조의 갑판을 가진 주력 함선이라면, 귀선은 그 위에 철갑 혹은 목재 덮개를 씌워 적의 등선 전술을 원천 차단한 돌격 특화 함정입니다. 쉽게 말해 당시 왜군의 주요 전술인 배에 뛰어올라 칼싸움을 벌이는 방식을 처음부터 봉쇄하는 설계였습니다.
영화 속에서 왜군은 조선 화포의 최대 사거리를 분석하고, 화포망을 돌파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이 부분이 제 경험상 영화에서 가장 덜 주목받는 장면인데, 사실 전술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정작 그 분석이 한산도의 넓은 바다에서 학익진 앞에 무력화된다는 아이러니가 이 영화의 서사 구조를 완성합니다.
명량과 비교해서 달라진 것, 그리고 아쉬운 것
'명량'을 재미있게 봤던 터라 '한산'에 대한 기대치가 상당히 높았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투 장면의 스케일과 CG 완성도는 확실히 올라갔습니다. 명량이 울돌목의 좁은 물목을 활용한 '지형 이용 수성'이었다면, 한산은 넓은 바다에서 펼치는 '능동적 포위 섬멸'이라는 점에서 전술적 쾌감의 결이 다릅니다. 제가 직접 두 편을 연달아 감상해보니, 한산이 전략 전술의 완성도 면에서는 더 정교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전반부 역사적 배경 설명이 예상보다 길었고, 특히 조정 회의 장면과 왜군 내부 논의 장면이 번갈아 이어지는 구간에서 리듬이 다소 느려졌습니다. 129분의 러닝타임 중 90분을 해상 전투에 할애했다는 점은 분명한 강점이지만, 그 전투에 도달하기까지의 전개가 길다고 느끼는 관객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순신 역의 박해일은 '명량'의 최민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순신을 그려냈습니다. 격정보다 침묵, 카리스마보다 냉철함으로 장군을 표현한 방식이 개인적으로는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으로서, 이 영화는 앞선 '명량'과 뒤따를 '노량: 죽음의 바다' 사이의 서사적 연결고리를 단단하게 채워줬다고 생각합니다(출처: 한국영상자료원 KMDB).
자주 묻는 질문
Q. 한산 용의 출현, 명량 먼저 보고 봐야 하나요?
A. '한산'은 '명량'보다 5년 앞선 1592년을 배경으로 한 프리퀄입니다. 시간 순서상 한산 → 명량 → 노량이지만, 개봉 순서는 명량이 먼저였습니다. 제 경험상 어느 쪽을 먼저 봐도 이해에는 무리가 없고, 오히려 명량을 먼저 보면 한산에서 이순신의 전략적 기반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생깁니다.
Q. 학익진 전술이 실제 한산도 대첩에서도 사용됐나요?
A. 네, 학익진은 임진왜란 당시 실제로 사용된 전술로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조선왕조실록에도 한산도 해전에서 함대를 좌우로 펼쳐 포위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다만 영화적 연출을 위해 일부 장면은 각색된 부분도 있으니, 역사 팩트와 영화적 허구를 구분해서 보는 것이 좋습니다.
Q. 거북선(귀선)이 한산도 대첩에서 실제로 투입되지 않았나요?
A. 영화에서는 설계도 탈취 이후 거북선을 투입하지 않는 것으로 설정했지만, 이 부분은 역사적으로 확정된 사실이 아닌 영화의 극적 장치에 가깝습니다. 실제 한산도 대첩에서 거북선이 사용됐는지에 대해선 사료마다 해석이 엇갈립니다. 일반적으로 거북선은 임진왜란 초기 전투에서 제한적으로 운용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Q. 판옥선이 뭔가요? 거북선이랑 다른 건가요?
A. 판옥선(板屋船)은 조선 수군의 주력 전투함으로, 2층 구조의 넓은 갑판 위에 지붕을 얹은 형태입니다. 여기서 판옥선이란 조선 수군의 일반 전투함 전체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화포를 다수 탑재해 원거리 포격전에 특화되어 있었습니다. 거북선은 이 판옥선을 기반으로 덮개를 씌운 돌격용 특수 함정이라고 보면 됩니다. 즉, 판옥선은 함대의 근간이고 거북선은 그 파생형입니다.
결론
베트남에서 두 번이나 극장을 찾아 본 영화가 된 건 솔직히 처음이었습니다. 언어 장벽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오히려 이 영화를 더 꼼꼼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고, 두 번째 관람에서 전술적 맥락까지 이해했을 때 이순신 장군을 향한 존경심은 처음보다 훨씬 깊어졌습니다.
낯선 나라의 극장에서 우리 역사 속 인물을 만나는 경험은 분명 특별합니다. 앞으로 이순신처럼 잘 알려진 위인뿐 아니라, 아직 조명받지 못한 인물들의 이야기도 해외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런 영화들이 쌓일수록, 한국 역사에 관심을 갖는 외국 관객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거라고 봅니다. '노량: 죽음의 바다'까지 3부작을 완주할 계획이신 분이라면, 한산을 보기 전에 임진왜란의 해전 흐름을 간략히 파악해두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밀도가 달라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참고:
와..미친.. 1700만 명이 본.. 대한민국 역대 관객 순위 부동의 1위인 전설의 영화 《명량》의 후속작, 《한산》이 8년 만에 나왔다..! _ 지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