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사 영화 제작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설렘이었습니다. 화면 속에서 듀로탄과 굴단이 어떤 모습으로 움직일지, 오크와 인간의 전쟁이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하며 극장을 찾았어요. 평점은 좋지 않았지만, 게임 팬으로서 이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할지 나름의 기준이 생긴 작품입니다.
영화 기본 정보
제목: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Warcraft)
국내 개봉: 2016년 6월 9일
감독: 던컨 존스
출연: 트래비스 핌멜, 폴라 패튼, 벤 포스터, 도미닉 쿠퍼, 토비 케벨
러닝타임: 122분
관람 정보: 2016년 6월 개봉 첫주, 스퀘어원 CGV에서
나의 별점: ★★★☆☆ (게임 팬 점수로는 ★★★★☆)
영상 출처: Universal Pictures At Home
※ 아래에는 줄거리와 결말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극장 불이 꺼지기 전, 나는 호드였다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호드였습니다. 워크래프트 3에서 스랄의 캠페인을 하며 오크가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자기 민족을 지키려는 존재라는 걸 처음 알았고, 그 뒤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도 줄곧 오크 주술사로만 플레이했어요. 새벽까지 길드원들과 레이드를 돌던 대학 시절이 지금 생각해도 가장 뜨거웠던 시간입니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 하겠지만, 그 당시에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삶이었습니다.
두 세계가 충돌하는 이야기
영화는 오크들의 고향이 이미 황폐해진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흑마법사 굴단은 생명을 빨아들이는 마법으로 차원의 문을 열고, 오크 대군은 그 문을 지나 인간들이 사는 아제로스로 쳐들어오죠. 서리늑대 부족의 족장 듀로탄은 임신한 아내 드라카, 친구 오그림과 함께 이 침략에 합류하지만, 굴단의 마법이 새로운 땅마저 망가뜨릴 거라는 걸 깨닫고 맞서기 시작합니다.
인간 쪽에서는 사령관 안두인 로서가 젊은 마법사 카드가와 함께 침략의 징후를 쫓고, 수호자 메디브는 두 세력의 운명을 가르는 인물로 이야기 내내 긴장을 붙잡고 있습니다.
오크가 주인공처럼 보였던 이유
영화에서 가장 잘된 선택은 오크를 단순한 괴물로 그리지 않은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듀로탄과 드라카의 감정선은 오크 얼굴임에도 충분히 전해졌고, 표정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CG는 당시 기준으로 상당한 수준이었어요. 게임에서 알던 서리늑대 부족의 이미지와도 크게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듀로탄, 굴단, 로서 같은 이름이 나올 때마다 게임에서 이 인물들을 처음 만났던 순간이 겹쳐 보였는데, 이건 원작을 모르는 관객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이에요.
게임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반대로 순수하게 영화 한 편으로만 보면 전개가 빠르고 설명이 부족합니다. 두 시간 안에 오크와 인간, 마법사, 차원 이동까지 모두 담으려다 보니 인물 관계와 세계관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아요. 같이 본 여자친구(와이프)는 게임을 전혀 모르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그래서 누가 착한 편이냐"고 물었습니다. 인물 이름과 세력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따라가기 벅찼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듀로탄과 드라카 부부 이야기만큼은 기억에 남는다고 했어요. 게임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오크 가족의 감정선은 전해졌다는 뜻이라, 이 영화가 어디에 힘을 줬어야 했는지 오히려 여자친구(와이프)의 반응에서 보였습니다.
강물에 떠내려간 아기, 그리고 끊긴 이야기
영화는 듀로탄의 갓난아기가 강물에 실려 떠내려가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게임 팬이라면 바로 알아보는 이 아기가 훗날 오크들을 이끄는 영웅 스랄이에요. 처음부터 시리즈를 염두에 둔 결말이었지만, 북미 흥행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후속편은 나오지 못했습니다. 중국에서는 큰 성공을 거둬 전 세계 수익은 꽤 높았는데도요.
게임에서 스랄의 이야기를 직접 따라가 본 사람으로서, 그 서사가 영화로 이어지지 못한 건 지금도 아쉽습니다. 이 세계관에는 영화 몇 편으로도 다 담기 어려운 이야기가 아직 남아 있으니까요.
아쉬웠던 점
인간 진영 인물들의 매력이 오크보다 확실히 덜했습니다. 로서와 카드가는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인데도 감정선이 충분히 쌓이지 않아서, 중요한 장면에서 몰입이 끊길 때가 있었어요. 메디브가 왜 그렇게 변했는지도 게임을 모르는 관객에게는 설명이 턱없이 부족했을 겁니다. 오크 쪽에 들인 정성만큼 인간 쪽에도 시간을 썼다면 두 세력의 충돌이 훨씬 무겁게 다가왔을 것 같아요.
그래도... 게임을 영화로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마치며
완성도만 놓고 보면 분명 아쉬운 영화입니다. 하지만 게임 팬으로서 극장에서 느낀 반가움은 평점과는 별개의 경험이었어요. 원작을 모른다면 듀로탄 가족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보시길, 원작을 안다면 익숙한 이름들이 스크린에 처음 등장하는 순간을 즐기시길 권합니다.
이 글을 쓰며 유튜버 스토리 님의 리뷰 영상을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