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 만에 속편이 나온다는 소식에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고등학생 때 극장에서 1편을 보고 오프닝 곡을 한동안 플레이리스트에 넣어 들었던 사람으로서, 그 기억을 건드렸다가 망치면 어쩌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단순한 속편이 아니었습니다. 20년 전 객석에 앉아 있던 고등학생과, 지금 직장에서 버티고 있는 제가 동시에 겹쳐 보이는 이상한 경험이었어요.
영화 기본 정보
제목: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The Devil Wears Prada 2)
국내 개봉: 2026년 4월 29일
감독: 데이비드 프랭클
출연: 메릴 스트립, 앤 해서웨이, 에밀리 블런트, 스탠리 투치
러닝타임: 119분
관람 정보: 2026년 5월2일, 송도 메가박스
나의 별점: ★★★★☆
영상 출처: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공식 유튜브
※ 아래에는 줄거리와 주요 장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란다 - 코트를 직접 거는 사람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기억하는 장면은 아주 짧습니다. 1편에서 출근하자마자 코트를 비서 책상에 던져놓던 미란다가, 이번엔 스스로 옷장에 코트를 겁니다. 권위로 밀어붙이면 갑질이 되는 시대, 그 변화를 몸으로 익히고 있는 사람의 어색함이 그 한 컷에 다 들어 있었습니다.
이번 미란다는 사방에서 몰립니다. 아무도 인쇄 잡지를 읽지 않는 시대에 광고주를 잡아야 하고, 협력 업체와 관련된 의혹이 와전되면서 SNS에서 표적이 되기도 하죠. 그런 미란다가 눈물을 보이는 장면에서 예상보다 훨씬 오래 마음이 걸렸습니다. 20년을 버텨온 사람도 바뀐 시대 앞에서는 흔들린다는 것. 3개월 간 힘들게 준비했던 신규 모델 개발이 하루 아침에 드롭 되었을때, 느꼈던 허탈함이 미란다의 눈물과 겹쳤어요.
앤디 - 열심히 살았는데 받은 해고 통보
1편의 앤디는 성공을 위해 자신을 내려놓는 삶이 싫어서 미란다를 떠났죠. 그리고 20년 동안 상을 받을 만큼 인정받는 기자가 됐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정점에서 회사 전체가 해고 통보를 받아요. 다시 런웨이로 돌아온 앤디는 이제 비서가 아니라 기획 기사를 책임지는 에디터지만, 직급이 오른 만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은 오히려 더 커졌습니다.
솔직히 이 부분은 보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열심히 하면 된다고 믿고 싶은데, 영화는 그렇게 쉬운 답을 주지 않거든요. 이 영화가 단순한 커리어 성공담이 아닌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요즘 일이 막히면 일단 가장 빠르고, 무난한 방법부터 찾는 편인데, 끝까지 부딪히는 앤디를 보면서 그게 한 번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나 - 20년 사이 직장인이 된 관객
고등학생 때의 저에게 미란다는 그냥 무서운 상사였습니다. 앤디가 버티고 성장하는 이야기가 그저 재미있었죠. 그런데 지금의 저는 어느덧 입사 11년 차, 위아래 눈치를 다 보는 중간 관리자가 됐고 퇴근하면 연년생 아이들과 와이프가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됐고,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미란다와 앤디 양쪽 모두의 자리가 다 이해가 됐습니다.
원래 배우들이 그대로 나이 든 채 돌아오는 이런 속편을 흔히 레거시 시퀀이라고 부르는데, 저는 이 영화가 성공한 이유가 향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1편을 사랑했던 관객들이 20년 사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정확하게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앤디 또래였던 관객들이 이제는 미란다의 나이에 더 가까워졌으니까요. 원작 소설의 속편과 달리 앤디를 꼭 기자로 성장시킨 것도 그래서 더 납득이 갔습니다.
패션을 몰라도 볼 만할까요?
충분합니다. 이 영화의 중심은 패션쇼가 아니라 해고, 조직의 위기, 자기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물론 의상은 압도적이고, 아는 만큼 더 보이는 재미는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편에서 들었던 멜로디가 다시 흘러나오는 순간, 고등학생 때 그 극장 자리로 잠깐 돌아간 기분이었어요. 1편을 안 봤다면 먼저 보고 가시길 권합니다. 2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건너온 느낌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무기거든요.
아쉬웠던 점
인물과 이야기가 많아지다 보니 에밀리와 나이젤의 분량이 생각보다 적었습니다. 1편의 경쾌한 템포를 기대했다면 중반이 조금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마치며
완벽한 영화라기보다는, 이 인물들과 이 소재로 만들 수 있는 최대치에 가까운 영화였습니다. 보고 나서 한동안 미란다의 눈물이 머릿속에 남았고, 다음 날 출근길에는 조금 다른 태도로 일을 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편을 극장에서 봤던 기억이 있는 분이라면, 앤디와 미란다가 어떻게 됐는지 한 번이라도 궁금했다면, 이 영화가 꽤 솔직하게 답해줄 겁니다.
이 글을 쓰며 유튜버 기묘한 케이지 님의 리뷰 영상을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