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역대 최다 타이 기록인 6개 부문을 수상한 영화 <라라랜드>. 저는 이 영화를 처음에 OST로 먼저 만났습니다. 음악만 들었을 때도 분위기가 좋았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서는 한동안 마음을 정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두 주인공의 아련한 표정이 음악과 겹쳐서 계속 떠오르더군요.
OST가 먼저였는데, 영화가 더 깊었습니다
혹시 음악을 먼저 듣고 영화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라라랜드>가 딱 그런 경우였습니다. 'City of Stars'를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분위기 좋은 재즈 팝 정도로만 느꼈습니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세바스찬이 홀로 피아노 앞에 앉아 그 곡을 연주하는 장면과 함께 들으니, 단순한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의 음악은 다이제틱 사운드(diegetic sound)와 비다이제틱 사운드(non-diegetic sound)를 아주 영리하게 섞어 씁니다. 여기서 다이제틱 사운드란 영화 속 인물도 들을 수 있는 소리, 즉 세바스찬이 직접 연주하는 피아노 선율처럼 장면 안에 실재하는 음악을 말합니다. 반대로 비다이제틱 사운드는 관객만 듣는 배경 음악입니다. <라라랜드>는 이 두 가지를 경계 없이 넘나들면서, 음악이 단순히 배경을 채우는 게 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제가 이 점을 처음 의식하고 나서 다시 봤을 때, 소름이 돋았습니다.
작곡가 저스틴 허위츠(Justin Hurwitz)는 이 영화를 위해 재즈와 뮤지컬 사운드트랙의 어법을 동시에 구사했습니다. 재즈(Jazz)란 즉흥 연주와 스윙 리듬을 기반으로 한 미국 고유의 음악 장르입니다. 영화 속 세바스찬이 재즈에 집착하는 이유도 바로 이 '즉흥성'과 '자유로움'에 있는데, 그 철학이 OST 전체에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어느 한 곡만 고르기가 어려울 정도로 곡마다 담긴 감정의 결이 전부 달랐고, 제 경험상 이 정도로 앨범 전체를 반복해서 듣게 만드는 영화 음악은 드물었습니다.
- Another Day of Sun — 경쾌한 오프닝, 꿈을 향해 달려가는 군상의 에너지
- A Lovely Night — 미아와 세바스찬의 티격태격한 설렘을 그대로 담은 곡
- City of Stars — 두 사람의 관계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곡
- Audition (The Fools Who Dream) — 미아가 꿈을 포기하기 직전, 모든 것을 쏟아붓는 장면의 곡
저스틴 허위츠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습니다(출처: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음악만으로도 이미 완성된 작품이라는 평가가 괜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꿈과 사랑, 둘 다 잡을 수 있을까요
미아와 세바스찬의 관계를 보면서 제가 계속 떠올린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꿈을 위해 사랑을 포기할 수 있을까?" 아니, 정확히는 이겁니다. "꿈과 사랑이 서로를 밀어낼 때,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 걸까?"
영화는 이 질문에 단순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미아는 배우가 되고 싶고, 세바스찬은 자신만의 재즈바를 열고 싶습니다. 두 사람의 꿈은 처음에는 서로를 밀어주는 동력이 됩니다. 세바스찬은 미아에게 "꿈꾸는 바보들을 위해" 노래하라고 독려하고, 미아는 세바스찬의 재즈에 대한 열정을 보며 그가 가진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에 끌립니다. 캐릭터 아크란 인물이 이야기 안에서 겪는 내면의 변화와 성장 과정을 말합니다. 세바스찬은 현실과 타협하면서 이 아크가 어긋나기 시작하고, 그 균열이 두 사람 사이를 서서히 갈라놓습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특히 주목했던 건 색채 연출이었습니다. 미아가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장면은 따뜻한 붉은 빛으로 감싸져 있고, 반대로 세바스찬이 재즈를 내려놓고 밴드 생활을 선택하는 장면은 차가운 푸른빛이 그를 덮고 있습니다. 감독 데이미언 차젤(Damien Chazelle)이 색채 심리학(color psychology)을 의도적으로 활용한 것인데, 색채 심리학이란 색이 인간의 감정과 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그냥 지나쳤다가, 두 번째 볼 때 비로소 눈에 들어왔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싸우고 벌어지는 과정도 생각보다 현실적으로 그려집니다. 거창한 배신이나 극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그냥 바빠지고, 연락이 줄고, 서로의 선택에 서운해지는 것. 그 평범한 균열이 오히려 더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결말은 새드 엔딩일까요, 해피 엔딩일까요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가장 많이 나누는 논쟁이 바로 이겁니다. 저도 처음 봤을 때는 "왜 이렇게 끝나지?"라는 당혹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 세 번 보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결말에서 세바스찬은 미아가 추천했던 이름 그대로 자신의 재즈바를 엽니다. 미아는 세계적인 배우가 됩니다. 두 사람은 각자의 꿈을 이뤘습니다. 그리고 재즈바에서 다시 마주쳤을 때, 세바스찬이 연주하는 테마곡에 맞춰 두 사람의 '다른 결말'이 몽타주 시퀀스(montage sequence)로 펼쳐집니다. 몽타주 시퀀스란 여러 장면을 빠르게 이어 붙여 시간 경과나 심리 상태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편집 기법입니다.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은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떤 삶이 펼쳐졌을지를 함께 상상합니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와 서로에게 미소를 보내며 영화는 끝납니다.
저는 이 결말이 슬프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정확히는, 슬프지만 아름답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의 꿈을 지켜주기 위해 이별을 선택했고, 그 선택이 실제로 맞았습니다. 서로를 잃었지만 서로 덕분에 꿈을 이뤘으니까요. 이것이 감독이 말하고자 한 "꿈꾸는 바보들에 대한 헌사(ode to the dreamers)"가 아닐까 합니다.
<라라랜드>는 2017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7개 부문을 수상하며 역대 최다 수상 기록을 세웠습니다(출처: Golden Globe Awards). 이 수치 자체보다 제게 더 인상적이었던 건, 수상 이후에도 계속 회자되는 영화라는 점입니다. 대개 수상작들은 시상식이 끝나면 조용해지는데, 이 영화는 지금도 OST가 플레이리스트에 살아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굉장히 드문 일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라라랜드 OST 중에 가장 유명한 곡이 뭔가요?
A. 'City of Stars'가 가장 많이 언급됩니다.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한 곡이기도 하고, 세바스찬과 미아가 함께 부르는 장면이 영화 전체의 감성을 압축하고 있어서 기억에 남기 쉽습니다. 다만 저는 'Audition (The Fools Who Dream)'도 못지않게 좋았는데, 미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붓는 그 장면과 함께 들으면 완전히 다른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Q. 라라랜드 결말이 왜 그렇게 끝나는 건가요?
A. 감독 데이미언 차젤은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잃어버리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서로 때문에 꿈을 이뤘고, 그 꿈을 지키기 위해 서로를 놓아줬습니다. 완전한 해피 엔딩이 아닌 이유는, 현실에서 꿈과 사랑을 동시에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솔직하게 담고 싶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Q. 라라랜드는 몇 번 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나요?
A. 한 번만 봐도 이야기는 충분히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부터는 색채 연출, 음악의 배치, 인물들의 시선 처리 같은 디테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저는 세 번 이상 봤는데, 볼 때마다 처음에는 몰랐던 장면에서 새로운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한 번으로 끝내기엔 아까운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Q. 라라랜드에서 재즈가 그렇게 중요한 이유가 있나요?
A. 재즈는 세바스찬의 꿈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말하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는 장치로도 쓰입니다. 세바스찬이 "재즈는 사람들이 외면할수록 더 중요해진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건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감독의 메시지와 직결됩니다. 저는 이 대사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문장이라고 봤습니다.
결론
OST로 먼저 만나고, 영화로 더 깊어지고, 보고 나서 한동안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던 영화. 저에게 <라라랜드>는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음악이 좋아서 보기 시작했는데, 끝나고 나서 기억에 남은 건 두 주인공이 서로를 바라보던 눈빛이었습니다.
꿈을 쫓는 사람이라면, 혹은 무언가를 포기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다르게 느껴질 것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아직도 OST와 함께 반복해서 들으며 그 여운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OST를 먼저 들어보시는 것도 좋은 시작이 될 것 같습니다.
참고:
[영화리뷰/결말포함] 가난한 피아니스트와 배우 지망생의 꿈에 대한 열정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 // 텔레토비 주의 (라라랜드) _ 시크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