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을 감옥에서 보낸다면, 그건 정의일까요 폭력일까요. 레미제라블을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입니다. 노래가 흐르는데 눈물이 먼저 나왔고, 상영이 끝난 뒤에도 한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어요.
영화 기본 정보
제목: 레미제라블 (Les Misérables)
국내 개봉: 2012년 12월 19일
감독: 톰 후퍼
출연: 휴 잭맨, 러셀 크로우, 앤 해서웨이, 아만다 사이프리드, 에디 레드메인
러닝타임: 158분
처음 본 날: 2012년 크리스마스 무렵, 여자친구(현 와이프)와 송도 메가박스에서
나의 별점: ★★★★★
영상 출처: Universal Pictures UK
※ 아래부터는 결말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은촛대 한 쌍이 바꾼 인생
장발장의 처음 형량은 5년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차례 탈옥을 시도하면서 형기가 19년까지 늘어나죠. 출소한 그를 받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전과자라는 이유 하나로 사람을 영영 밀어내는 장면을 보며 느낀 건, 안타까움보다 분노에 가까웠어요.
그런 장발장을 바꾼 건 은촛대 한 쌍이었습니다. 자기 집 은식기를 훔쳐 달아난 사람을 감싸며 이 촛대도 가져가라고 내어주는 신부의 모습은, 용서라기보다 한 사람의 존엄을 되돌려주는 행동으로 보였습니다. 이 장면을 보고 나서, 저는 평소에 누군가를 판단할 때 그 사람의 사정을 얼마나 헤아렸는지 돌아보게 됐어요.
라이브로 부른 노래의 힘
이 영화의 노래는 미리 녹음한 음원에 입을 맞춘 게 아니라,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이 직접 부르며 녹음했습니다. 그래서 감정이 북받치는 순간 숨이 흔들리면 그 흔들림까지 그대로 남아 있어요. 완벽하게 다듬어진 노래보다 그 떨림이 훨씬 마음을 건드립니다. 판틴이 머리카락을 자르고 노래하는 장면에서 무너졌습니다. 딸을 위해 자기 몸을 하나씩 내어주는 모습이 너무 아팠어요.
실패한 봉기가 오래 기억되는 이유
후반부의 바리케이드 전투는 1832년 6월 파리에서 실제로 일어난 봉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결국 실패로 끝났고 더 큰 혁명들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인데, 위고의 소설 덕분에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죠. 청년들의 모임 이름 ABC의 벗이 프랑스어로 비천한 사람들과 소리가 비슷하다는 말장난이라는 것도 원작을 찾아보며 알게 됐습니다. 이름부터 누구 편에 서 있는지 말하고 있었던 거예요.
아빠가 된 지금 떠올리는 장발장
그때는 장발장이 그저 착한 사람으로 보였는데, 연년생을 키우는 지금 떠올려보면 남의 아이를 맡아 평생을 거는 그 결심이 얼마나 큰 건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아쉬웠던 점
대사 대부분이 노래로 이어지다 보니, 뮤지컬에 익숙하지 않은 분이라면 초반 30분은 조금 낯설 수 있습니다. 러셀 크로우의 노래는 연기에 비해 힘이 약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처음 보는 분들께
인물이 많아 복잡해 보이지만 이야기는 세 갈래로 정리됩니다. 장발장의 구원과 도망, 팡틴과 코제트 모녀의 이별, 그리고 마리우스와 청년들의 봉기예요. 이 세 줄기만 알고 들어가도 훨씬 수월합니다. 뮤지컬과 영화 중 무엇을 먼저 볼지 고민이라면, 배우들의 표정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영화로 이야기를 먼저 익히는 순서를 추천합니다.
마치며
레미제라블이 제게 가장 오래 남긴 건 어떤 장면이나 노래보다, 겉모습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사정을 먼저 보려는 태도였습니다. 지금 제가 당연하게 누리는 평범한 하루도 누군가 목숨을 걸었던 시간 위에 서 있다는 것, 그걸 이 영화로 처음 실감했어요. 인물이 많아 보여도 겁먹지 마세요. 노래가 감정을 대신 설명해 주는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