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딱 2분. 주인공 크리스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2분입니다. 처음 이 설정을 들었을 때는 그게 얼마나 쓸모 있겠나 싶었어요.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 그 짧은 2분이 얼마나 촘촘하게 쓰이는지, 제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는 걸 인정해야 했습니다.
영화 기본 정보
제목: 넥스트 (Next)
개봉: 2007년
감독: 리 타마호리
원작: 필립 K. 딕의 단편 소설 「골든 맨」
출연: 니콜라스 케이지, 줄리앤 무어, 제시카 비엘
러닝타임: 96분
관람 정보: 고등학생 때 인천 CGV에서
나의 별점: ★★★★☆
영상 출처: Youtube films
※ 아래부터는 결말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분이면 충분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마술사로 사는 크리스는 2분 뒤의 일을 미리 볼 수 있습니다. 한 번 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 원하지 않는 미래가 보이면 다른 선택을 해보고 다시 확인할 수 있어요. 그래서 그의 능력은 미래를 읽는다기보다 미래를 설계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카지노에서 필요한 만큼만 돈을 따고, 보안요원이 다가올 걸 미리 알고 옷을 갈아입은 채 빠져나가는 장면은 즉흥처럼 보이지만 사실 2분 뒤의 동선을 전부 확인한 뒤 거꾸로 계산해서 움직인 결과입니다. 위험한 순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크리스가 미리 본 장면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의 놀라움이 이 영화만의 재미예요.
저는 아이들 낮잠 재우는 시간에 쓰고 싶습니다. 둘째가 겨우 잠들었는데 첫째가 갑자기 소리를 질러서 둘 다 깨는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있거든요. 2분만 미리 볼 수 있다면 첫째를 먼저 안아서 거실로 데리고 나가 있을 텐데요. 크리스처럼 카지노에서 돈을 따거나 총알을 피하는 거창한 쓰임새는 아니지만, 육아하는 아빠에게는 그 2분이 정말 간절할 때가 많습니다. 이 영화를 다시 보며 그 생각만 했어요.
단 한 사람만은 더 멀리 보인다
크리스의 능력에는 예외가 하나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환영으로 봐왔던 여성 리즈에 관해서만은 2분보다 훨씬 먼 미래까지 보여요. 영화는 그 이유를 끝내 설명하지 않는데, 저는 오히려 그 점이 좋았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면 내 삶의 시야가 갑자기 넓어지는 순간이 있잖아요. 크리스가 식당에서 리즈에게 말을 걸기 위해 수십 가지 방법을 미리 시도해 보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말을 걸었다가 무시당하고, 다른 말로 시작했다가 또 실패하는 장면이 빠르게 이어지는데, 액션 장면보다 이 장면이 훨씬 인간적이고 웃겼어요. 미래를 볼 수 있어도 결국 마음을 얻는 건 진심이라는 걸 보여 주는 것 같았습니다. 연애하던 시절 아내에게 처음 말을 걸던 날도 떠올라서 혼자 웃었어요.
결말, 처음엔 황당했지만
솔직히 처음 결말을 봤을 땐 잠깐 멍했습니다. 핵폭탄이 터지는 장면까지 다 보여준 뒤, 그 모든 게 크리스가 리즈와 함께 있으면서 미리 본 미래였다는 반전이 나오거든요. 그리고 크리스는 그 미래를 막기 위해 FBI와 함께 나섭니다.
속았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 결말은 예지라는 설정과 가장 잘 맞는 형식이었습니다. 관객이 본 건 크리스가 고를 수 있는 여러 미래 가운데 실패한 하나였고,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라는 거죠. 원작인 필립 K. 딕의 단편 「골든 맨」에서는 설정 일부만 빌려왔고 이야기는 완전히 새로 짰습니다.
타임루프 영화와는 어떻게 다를까
넥스트를 타임루프 영화로 분류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하지만 크리스는 시간을 되돌리지 않아요. 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2분 뒤의 여러 갈림길을 미리 걸어보고 하나를 고르는 쪽입니다. 그래서 반복이 쌓이며 웃음이나 비극이 생기는 타임루프 영화와 달리, 넥스트는 지금 보는 장면이 진짜인지 미리 본 건지를 계속 헷갈리게 만드는 긴장감으로 끌고 갑니다. 반복되는 공간을 다룬 8번 출구 후기나 시간을 되돌리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 후기와 비교해 보시면 차이가 더 선명해요.
아쉬웠던 점
이야기의 개연성은 꽤 느슨합니다. 리즈에게만 능력이 확장되는 이유나 크리스를 쫓는 쪽의 사정이 대부분 생략돼 있어서, 설정의 매력에 비해 이야기가 얇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테러 조직의 정체나 목적이 거의 설명되지 않아서 악당이 그냥 장애물처럼만 느껴졌습니다. 크리스를 쫓는 FBI 요원의 사연도 짧게 지나가서 아쉬웠고요. 2분이라는 설정이 워낙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주변 인물들까지 조금만 더 촘촘하게 그려졌다면 훨씬 오래 기억되는 SF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줄리앤 무어 같은 배우를 이 정도로만 쓴 것도 솔직히 아까웠어요.
마치며
넥스트는 2분이라는 제한된 능력을 얼마나 다양하게 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능력에 제한이 있을수록 오히려 긴장감이 커진다는 걸 이 영화를 보고 실감했어요. 보신다면 카지노 탈출 장면에서 크리스가 언제 무엇을 미리 확인하고 움직이는지를 따라가 보세요. 단순한 액션 이상의 설계가 보입니다.
이 글을 쓰며 유튜버 다씨네 님의 리뷰 영상을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