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에서 제일 무서웠던 건 귀신도, 칼을 든 살인마도 아니었습니다. 반갑게 웃으며 집 구경을 시켜주는 여자친구 아버지의 친절이었어요. 무난한 공포 스릴러 한 편 보자는 생각으로 틀었는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영화 기본 정보
제목: 겟 아웃 (Get Out)
국내 개봉: 2017년 5월 17일
감독: 조던 필
출연: 대니얼 컬루야, 앨리슨 윌리엄스, 브래들리 위트포드, 캐서린 키너
러닝타임: 104분
관람 등급: 15세 이상
나의 별점: ★★★★☆
영상 출처: 유니버설픽쳐스 공식 유튜브
※ 아래부터는 결말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친절이 불편해지는 순간
영화는 흑인 청년 크리스가 백인 여자친구 로즈의 부모님 집을 방문하면서 시작합니다. 처음엔 연인 부모님 댁에 처음 인사 가는 어색함 정도로 보여요. 결혼 전 처음 처가에 인사 갔던 날이 떠올랐습니다. 장인어른이 반갑게 집 구경을 시켜 주시는데, 그 친절이 고마우면서도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라 계속 긴장했던 기억이요. 식탁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부모님은 뭘 하시는지 질문이 이어질 때마다 정답을 맞혀야 하는 시험을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물론 그 집은 무서운 집이 아니었고, 지금은 아이들을 맡기고 영화 보러 갈 만큼 편한 곳이 됐어요. 그래서 크리스의 긴장이 더 실감 났습니다.
그런데 이 집의 친절은 어딘가 이상합니다. 파티에 모인 하객들은 크리스의 몸을 허락 없이 만지고, 좋은 유전자를 가졌겠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져요. 대놓고 적대적이지 않으니 당하는 사람은 내가 예민한 건가 의심하게 됩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손발이 오그라들었는데, 크리스는 로즈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불편함을 꾹 눌러 담아요. 그 억누름이 나중에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알고 나면, 이 장면들이 얼마나 계산된 연출인지 보입니다.
찻잔 소리가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로즈의 어머니가 찻잔을 스푼으로 휘젓는 소리 하나로 크리스를 최면에 빠뜨리는 장면은 이 영화의 상징 같은 장면입니다. 몸은 그대로인데 의식만 깊은 어둠 속으로 끝없이 떨어지는 그곳에서, 크리스는 자기 눈으로 바깥을 보고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이 집안이 흑인 청년들을 데려와 하려던 일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습니다. 겉으로는 흑인을 존중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그 젊고 건강한 몸을 탐냈던 거예요.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갖고 싶은 몸으로 보는 시선. 미국에서 흑인의 몸이 노예제를 통해 말 그대로 소유물 취급을 받았던 역사를 떠올리면, 이 설정이 단순한 SF 장치가 아니라는 게 느껴집니다.
크리스가 의자 팔걸이에서 뜯어낸 솜으로 귀를 막아 찻잔 소리를 차단하고 빠져나오는 장면에서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어요. 앞에서 지나가듯 보여준 장면이 탈출의 열쇠가 되는 구조가 정말 깔끔합니다.
두 번째 볼 때 보이는 것들
이 영화는 한 번 보고 끝내면 절반만 본 겁니다. 처음엔 그냥 이상하다 싶었던 관리인 월터의 한밤중 질주, 가정부 조지나가 웃으면서 흘리는 눈물, 파티 하객들의 묘한 몸짓이 결말을 알고 나면 전부 다른 의미로 읽혀요. 다시 보니 초반 사슴 사고 장면에서 로즈가 크리스 대신 경찰에게 나서서 따지는 모습이 전혀 다르게 보였습니다. 처음엔 남자친구를 감싸주는 다정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결말을 알고 나니 크리스의 기록이 남지 않게 하려는 행동이었던 거예요. 그걸 깨닫는 순간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그 뒤로는 로즈의 웃는 얼굴이 나올 때마다 화면을 제대로 보기 힘들 정도였어요. 같은 장면이 이렇게까지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저예산 영화가 만든 기적
겟 아웃은 제작비 450만 달러의 저예산 영화였지만 북미에서만 1억 7천만 달러가 넘는 흥행을 거뒀고, 조던 필 감독은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습니다. 거창한 특수효과 없이, 이 사람들의 표정이 왜 이렇게 불편하지 하는 감각 하나로 긴장을 쌓아 올린 결과예요.
결말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원래는 경찰이 도착해 오히려 크리스를 체포하는 훨씬 어두운 결말이 촬영되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최종판에서는 친구 로드가 도착하는데, 경찰차 불빛이 비칠 때 관객이 숨을 멈추는 그 순간까지 계산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쉬웠던 점
결말부의 탈출과 반격은 앞의 정교한 긴장감에 비해 조금 빠르고 단순하게 정리된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한 시간 넘게 숨 막히게 조여오던 이야기가 마지막 20분 동안 한꺼번에 풀리다 보니, 통쾌하면서도 어딘가 허전했어요. 크리스가 가족들을 하나씩 상대하는 장면은 공포보다 액션에 가까워서, 앞의 묘한 불편함을 더 길게 느끼고 싶었던 저에게는 아쉬운 선택이었습니다. 물론 관객이 숨을 돌릴 수 있게 한 결말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마치며
겟 아웃을 보고 가장 오래 남은 감각은 공포가 아니라 불편함이었습니다. 저 친절, 저 환대, 저 관심이 사실은 무기였다는 것. 평범해 보이는 태도 뒤에 편견과 욕망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걸 이렇게 직관적으로 보여준 영화는 흔치 않아요. 아직 안 보셨다면 꼭 두 번 보시길 권합니다. 두 번째가 훨씬 무섭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조던 필 감독의 다음 작품도 바로 찾아봤는데, 그 이야기는 어스 후기에 따로 남겨뒀어요.
이 글을 쓰며 유튜버 추디 님의 겟 아웃 리뷰 영상을 참고했습니다.